사람이 느끼고, 가져서, 쌓인 감정들은, 마치, 이곳, 저곳에서 약간의 연기를 내 품고 있는 활화산(活火山, active volcano)과 같습니다. 지금, 보기에는, 안전한 것 같지만, 어느 때, 어느 순간에, 갑자기 폭발할지 모릅니다.
그가 누구든, 쌓인 감정이 폭발하는 그때는, 감정의 지배를 받은,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나, 더 많은 사람이나, 사회에 큰 피해와 아픔을 주게 됩니다.
그런즉, 하나님의 사람들이여! 하루에도 열두 번 변하는 자기의 감정에 휘둘리지 맙시다. 바울 사도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고후 1:9)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약 1:17)도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미련한 사람은, “다툼을 일으키고,”(잠 20:3),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잠 19:3)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렘 17:5)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자는,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사 2:22) 권면하십니다.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지식과 신앙생활의 재능을 많이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을 의지하기보다, 자신과 자기 감정의 지배를 잘 받는다면, 그 지식과 재능은, 빛보다, 어둠이 될 것입니다.
자기 감정의 지배를 잘 받는 사람은, 미련하게도 자기의 육체적 원함이나, 욕망에 예민하고, 충실합니다. 성령과 말씀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원하심과 하나님을 따라 사는 삶에 예민하고, 충실합니다.
엘리사가 구한 것을 보십시오.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왕하 2:9), 솔로몬이 구한 것은, “부나, 재물이나, 영광이나, 장수도 구하지 아니하고, … 백성을 재판하기 위하여 지혜와 지식”(대하 1:11)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통을 당하는 자의 감정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마 26:42) 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여! 이제, 내 뜻과 육신의 욕망을 담은, 감정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원하심과 성령과 말씀에 힘입어, 날마다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시 85:10)시기를 바랍니다.
찬송가 441장, 2,3,4절 가사입니다.
말씀 위에 서서, 내 뜻 버리고, 감정을 버리고, 말씀에 서니, 불완전한 믿음, 완전해지고, 내가 이제부터, 주만 붙드네.
나의 모든 욕심, 던져버리고, 내가 염려하며, 계획하던 것, 믿고, 기도하며, 주께 맡기고, 주의 뜻을 따라, 살기 원하네.
믿음으로 닻을 주께 던지고, 끊임없이 주를 찬송하면서, 전엔 나를 위해, 일해 왔으나, 이젠 주만 위해, 힘써 일하리.
– Servant Shepherd –
